1994년 11월 명지포커스 제7호 ‘사회속의 명지인’ 코너에 백일섭 동문(영문 64)이 실렸다. “영문과임에도 연극에 몰두할 수 있었던 것은 제 자신이 연극을 워낙 좋아도 했었지만 당시 설립자이셨던 유상근 이사장님의 권유와 배려가 컸었습니다”라는 인터뷰를 명지포커스 100호를 맞이하여 다시금 주목해본다. 백일섭 동문을 만나 제7호 명지포커스 인터뷰를 바탕으로 연기 전반의 이야기와 더불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명지포커스 제7호 ‘사회속의 명지인’ 기사
이 시대 진정한 연기자
백 일 섭 (탤런트, 영문학과 `64학번)
작년에 막을 내린 MBC·TV의 ‘아들과 딸’에서 60~70년대의 아버지 상을 리얼하게 그려내 실추되어가던 아버지들의 권위를 다시금 되살리게 하는 계기를 주었던 백일섭씨.
된장국처럼 털털한 웃음과 조금은 과장된 모습에서 우러나오는 자연스러움이 매력적인 그는 연기력에서만큼은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탄탄한 실력의 보유자.
재학시절 KBS에서 실시하는 ‘대학생 TV극 경연대회’에서 쟁쟁한 멤버들을 물리치고 당당히 최고연기상을 수상했던 그였기 때문이다.
“영문과임에도 연극에 몰두할 수 있었던 것은 제 자신이 연극을 워낙 좋아도 했었지만 당시 설립자이셨던 유상근 이사장님의 권유와 배려가 컸었습니다.”
최고연기상을 수상함으로써 세인의 눈에 오르게 했던 그는 졸업식 때 공로상을 받을 정도로 대학에 대한 애착이 누구보다도 강했다. 일부에서는 대학 교단에 서보라는 권유도 있지만 연기에만 몰두해도 부족할 것 같아 그만두었다며 한 가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삶이 아름답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4.19혁명과 5.16으로 나라가 어수선했던 시절에 대학을 다녔던 그는 “맹목적인 반대보다 비전있는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건강한 대학 풍토를 바란다.”며 후배들에게 당부의 말을 대신했다.
Q. 안녕하세요,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인터뷰를 읽을 독자분들을 위해 인사와 함께 백일섭 동문님의 근황에 대해 알려주세요.
A. 안녕하세요, 백일섭입니다. 만나 뵙게 되어 저 또한 반갑습니다. 최근 근황이라면, 한 5년 정도 몸이 좋지 않았어요. 허리 수술을 두 번하고 무릎수술도 했죠. 걷는 과정까지 5년 정도 걸린 것 같아요. 그러면서도 방송 출연을 틈틈이 해왔습니다. 꽃보다 할배도 찍고, KBS 프로그램인 ‘살림하는 남자’도 출연했는데 5개월 정도 하다가 건강에 무리가 가서 도저히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하차했고, 완벽히 건강이 돌아온 것은 아니지만 몸 좀 더 추슬러서 드라마 출연을 할 계획입니다. 좋은 연기 선보이겠습니다.
Q. 백일섭 동문님께서는 자랑스러운 명지 동문으로, 1994년 11월 명지포커스 제7호 ‘사회속의 명지인’ 코너에 실리셨습니다. 그때 당시 “영문과임에도 연극에 몰두할 수 있었던 것은 제 자신이 연극을 워낙 좋아도 했었지만, 당시 설립자이셨던 유상근 이사장님의 권유와 배려가 컸습니다”라고 인터뷰를 해주셨는데요. 지난날을 추억하며 이 때 당시의 이야기를 해 주세요.
A. 명지대 영문학과에 재학 중이었는데, 영문과 학장님이 갑자기 학장실로 호출을 하시더라고요. ‘연극부 만들어줄 테니 해볼래?’ 제안을 하셨어요. 그 전까지는 연기를 한 번도 해보질 않아서 고민을 좀 하다가 해볼게요, 했습니다. 배우 데뷔는 유상근 설립자님이 제안하셨어요. 유상근 설립자님이 지금의 저를 만든 셈이죠. 5월인가, 6월인가. 그 때쯤 KBS 대학생 TV극 경연대회가 열렸는데 거기를 나가보라고 권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작품을 준비해서 연습한 뒤 경연대회에 출전했습니다. 그게 10월 달 정도로 기억하는데, 녹화방송이 아닌 생방송이었어요. 처음 나가본 대회라 떨지도 않고 실수 없이 잘 끝마쳤습니다. 그리고 나선 잊어버렸어요. 제가 연기자를 꿈꿔왔던 사람도 아니었고, 당시에 텔레비전이나 전화가 있는 집이 얼마 안됐어요. 열 명 중에 한 집에 있을까 말까 한 정도? 제 집 또한 텔레비전과 전화가 없었죠. 그러던 와중 방학 때 12월 정도였을 거예요, 아마. 학교 직원이 좋은 소식이 있으니까 빨리 학교를 가보라고 하더라고요. 학교에 부랴부랴 도착하니 유상근 설립자님께서 “너 탤런트 됐어!”라며 기뻐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텔레비전이 없기도 했고 못 봤던 때라, 탤런트가 뭔지 잘 몰랐어요. 성우는 알았는데, 탤런트는 몰랐죠. 유상근 설립자님께서 제가 나간 KBS 대학생 TV극 경연대회가 전국에서 가장 큰 경연대회인데, 거기서 상을 받게 됐다고 알려주셨죠. 내로라하는 대학교들의 연극과와 연극 동아리들 학생이 대거 참여하는 대회였는데 제가 연기상을 탔으니, 놀랍기만 했죠. 그렇게 탤런트로 데뷔를 하게 되었습니다. 여담이지만, 그때 상금이 2만 5천 원 정도로 당시엔 꽤 큰 금액이었어요. 명동에 막걸리집 ‘형제주점’이라고 있는데, 거기가 제 단골집이기도 하면서 유명한 가수들이나 친구들이 많이 오는 가게였습니다. 그곳에 상금 전액을 맡기고 자주 가게를 드나들며 먹고 놀았던 기억이 납니다. 좋은 추억거리죠.
Q. 교단에 서보라는 권유도 있었지만 연기에만 몰두해도 부족할 것 같아 거절했다는 인터뷰가 감명 깊었는데요, 오랜 시간 연기를 해 오며 동문님만의 연기철학 혹은 가치관이 생기셨을 듯합니다. 이에 대해 이야기 부탁드립니다.
A. 유상근 설립자님이 교단에도 서보라고 제안을 했지요. 그때 당시에 명지전문대에 가서 학생들을 좀 가르쳐줄 수 있겠냐, 제안을 해 주셨고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남을 가르치려면 공부를 그만큼 해야 되는데, 책이라도 많이 읽었으면 모를까 그러질 않았으니 주저하게 되더라고요. 내가 살아온 이야기로만 6개월, 1년을 이야기 할 수는 있지만 고심 끝에 ‘그냥 연기만 해야겠다’ 결심이 섰습니다. 그리고 나서 지금까지 연기를 쭉 해왔는데, 어느덧 벌써 연기경력 55년차의 배우가 되었네요.
연기철학이라는 것은 없고, 가치관은 있습니다. 모나지 않고, 나 잘났다고 내세우지 않고 편하게 살자는 주의예요. 그냥, 편하게 연기 하다 가는 게 좋은 거라는 생각으로 살고 있어요. 최근 한 5년 정도 아파보니까, 건강이 최고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Q. 이 시대의 진정한 연기자 백일섭 동문님을 롤 모델로 삼으며 꿈을 키우고 있는 후배들에게 조언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허물, 쌓여있는 허물을 빨리 벗기기를 바랍니다. 허물을 걷어내야 사람이 순수해지고,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어요. 연기자를 꿈꾸는 후배들에게는 리얼함을 주문하고 싶어요. 기성 연기자들에게도 중요한 게 ‘얼마나 리얼하냐’의 문제예요. 리얼하게 연기한다는 게 쉬운 게 아닙니다. 이를 위해서는 생활부터도 리얼하게, 가식 없이 지내야 해요. 감정 이야기할 때 눈 따로, 말과 얘기 따로 하는 사람들이 많거든. 나부터 리얼하게 만들어 놓으면 그 리얼리즘이 연기로 쉽게 소화됩니다. 리얼하게 연기하지 않으면 성공하기 힘들죠. 생활부터 리얼하게 만들었으면 합니다. 작품을 맡고 역할이 주어지면, 그 작품 속 역할의 성격이 있겠죠. 그 역할을 분석해서 주변 사람들을 관찰하고, 살펴보면 훨씬 연기하기 쉬워질 거예요. 그리고 대본을 받으면 본인 맡은 배역뿐만 아니라 전체 대본을 외우고 이해하면 더 좋겠죠.
Q. 앞으로의 계획과 더불어 모교에 바라는 점이나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자유롭게 부탁드립니다.
A. 앞으로의 계획은 좋은 드라마 작품을 하는 것이겠죠. 연기라는 게 참 하기 힘들어요. 말에 구애되지 않아야 하는데, 대사에 구애될 때가 많습니다. 이 모든 것을 다 딛고 좋은 작품, 재미있는 작품을 하고 싶어요. 흙냄새 물씬 나면서, 슬프면서도 재미난 반전이 있는 작품을 꿈꿉니다. 슬프면서도 즐겁게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작품을 찍고 싶어요.
모교에 바라는 점은, 명지대 출신 탤런트나 연예인이 많은데 그 친구들과 함께 전문 극단을 하나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명지대 연극부나 학과에서 재능이 뛰어난 친구들도 선발해 함께 무대를 꾸미는 거죠. 그렇게 했을 때 명지대 후배들이 프로무대에 갈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되고, 운 좋으면 주인공으로 빛도 볼 수 있겠죠. 1년에 한번 정도 준비를 해서 추진하면 후배들도 양성하고, 명지대 출신 연예인들의 활동도 활성화되고 서로 좋지 않을까 합니다. 정말 추진된다면, 저도 기꺼이 참여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