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소속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제6기 위원장에 임명된 박인석 교수(건축대학장)를 만나다!

  • 분류교수
  • 작성일2020.06.26
  • 수정일2020.06.26
  • 작성자 김*현
  • 조회수2277
대통령 소속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제6기 위원장에 임명된 박인석 교수(건축대학장)를 만나다! 첨부 이미지

박인석 건축대학 학장이 대통령 소속 국가건축정책위원회6기 위원장에 임명되었다. 박 교수는 1995년 명지대 건축학부 교수로 취임해 올해로 25년째 명지대에 몸담고 있으며, 현재 명지대 건축대학 건축학부 교수와 대한주택공사 주택도시연구원을 겸하고 있다. 박인석 교수는 도시 건축분야 전문가로서 도시건축의 발전을 위한 정책 연구 및 저술 등의 활동을 해왔다. 국가건축정책위원회의 위원장으로 임명되어 국가 건축 도시 정책을 총괄에 이바지할 박인석 교수를 만나 소감과 함께 다채로운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1. 안녕하세요.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6기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위원장에 임명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소감과 함께 국가건축정책위원회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국가건축정책위원회는 2008년 말에 처음 시작하여, 2009년에 1기가 출범했습니다. 국건위는 정부부처랑은 달라서, 1기가 끝나도 곧바로 2기로 바통터치가 되지 않습니다. 대통령 직속 자문위원회이기에, 2기가 시작될 때까지 시간이 좀 소요됩니다. 대통령 직속 자문위원회는 국가 주요정책에 대해 대통령 및 행정부처에서 자문을 구하는 기구예요. 국건위에서 200712월에 건축기본법을 새로 재정했습니다. 제가 수업 시간에 자주 하는 이야기인데, ‘건축이라는 것을 외국에서는 빌딩하고 아키텍처로 구분해요. ‘빌딩은 건물이고 아키텍처가 건축이죠. 이 두개는 전혀 다른 개념인데, 우리나라에서는 두 개 모두를 건축이라 부릅니다. 건물 짓는 일을 할 때 건축한다고 하거나 건축일 한다, 이렇게 말하죠. 한국은 빌딩아키텍처가 건축이란 말로 혼합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 건축법을 영어로 말하자면 빌딩코드인데, 빌딩할 때 각종 법규를 건축법이라고 부르고 있는 거죠. 사실 아키텍처라는 건 문화적인 뉘앙스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빌딩은 건물을 짓는 행위인데, ‘건축기본법이라는 건 아키텍처에 관한 법입니다. 건물도 건축이고 캠퍼스도 건축이고 넓은 의미로는 우리 학교 앞의 도로도 건축이고 도로에 나무를 어떻게 심을까에 대해 묻는 것도 건축이에요. 조경, 즉 랜드스케이프도 아키텍처라고 하잖아요. 공간 환경, 생활환경을 조성하는 모든 것을 다 아키텍처라고 합니다. 이것에 대한 법을 200712월부터 건축기본법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어요. 관계부처에서 건축조정 및 대통령 소속으로 국건위를 두고, 국건위는 건축에 있어 중요한 정책을 심의하고, 국가정책위원회 규정을 심의합니다.

우리나라 건축 정책은 각 부처에 다 스며들어 있어요. 건축, 하면 보통 국토부를 많이 떠올리실 겁니다. 그런데 문화체육관광부도 건축을 해요. 도서관이나 체육시설 같은 것들도 다 건축이잖아요. 농림부는 농촌 마을을 만들기도 하고, 해안수산부에서는 어촌을 만들기도 합니다. 여기에는 어촌환경 조성을 위한 것까지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외교부는 대사관저를 건축하고, 기재부는 예산을 만지는 곳이죠. 모두 직간접적으로 건축에 다 관여되어 있어요. 그렇기에 국가 건축정책을 제대로 세우는 것은 중요하고, 건축정책을 자문하고 심의하는 것이 필요하죠. 이것을 돕는 기구가 바로 국건위입니다.

제가 제6기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위원장이 된 소감을 말하기 전, 우리나라 건축이 왜 중요한가에 대해 묻는 게 가장 중요할 것 같습니다. 앞서 건축과 건설을 일반인들이 잘 구분 못한다는 이야기를 주로 했는데, 우리나라에는 건설에 건축과 토목이 다 포함되어 있어요. 도로를 건설하는 것도 건설이고, 집을 짓는 것도 건축인데 건설에 포함되어서 토건이라고도 하잖아요. 우리나라 산업으로 보면 건설업이라고 있어요. 건축공사도 포함되고 토목공사도 포함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건설이 비중이 커요. 도로나 댐과 같은 구조물 하나를 건설하는 게 건축에 비해 훨씬 크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보세요, 우리 주변을 살펴보면 건축된 작은 집 하나하나가 국토를 가득 채우고 있잖아요. 엄청 많은 집들과, 1년에 벌어지는 건축 행위들 또한 굉장히 많죠. 예술적으로도 도시의 경관이나 풍경을 결정하는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 바로 건축입니다. 문화적으로나 산업적으로나 중요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건축 대부분이 크고 멋있는 것들, 예를 들면 DDP 같은 것들로 몇 개 채워져 있어요. 그것들은 관리가 법적으로 제대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동네를 채우고 있는 다가구 주택들, 파출소, 우체국, 작은 건물들은 관리가 잘 되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건축물의 개수로만 따지면 이것들이 90퍼센트 가량 됩니다. 우리 사회의 이슈나 골목경제, 골목환경을 좌우하는 게 바로 건축이에요. 건강하고 좋은 건물들이 되게끔 건축으로 조성해야 해요.

우리가 유럽 도시에 여행을 가면 에펠탑과 같은 큰 교외보다도 그 나라의 골목골목을 다니며 감탄하잖아요. 하나하의 집이 건강하고, 건실하고, 낭만이 있다는 평을 하죠.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그런 골목이 드뭅니다. 좋은 골목이 없어서 아쉬워요. DDP와 같은 건축물은 남부럽지 않게 세계적인 수준으로 몇 개 있지만, 정작 우리가 살아가는 골목은 왜 좋지 못할까요. 남루한 골목, 이것을 가꾸는 것이 건축정책의 가장 큰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국민들, 시민들이 자신들의 삶 속에서 매일을 직접 골목 속에서 보내요. 우리의 삶과 닿아있기 때문에 골목을 남부럽지 않게 건실하고 품격 있게, 매력 넘치게 만들어야 해요. 매일매일 삶의 환경이 중요해요. 활력을 주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이것은 또한 엄청난 양의 산업경제적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좋은 설계를 하는 사람들이 주도권을 갖게 만들고, 좋은 시공을 하는 사람들이 건설업에 뛰어들며, 골목골목 건설한 환경을 책임지면서 좋은 직장을 갖고 좋은 건물들을 만들어내야 하는데 지금 우리나라의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부실한 설계, 언제 부도내고 도망갈지 모르는 부실시공 등으로 얼룩져 있는 게 우리 동네 수많은 건물들이에요. 번듯한 건물들은 다 시내에 있고요. 우리 시민들이 매일매일 부딪히는 건물들은 굉장히 부실하고, 괜찮은 건물 하나 찾기가 몹시 힘들어요. 간혹 가다 저 건물 잘 지었다, 집 예쁘다고 생각이 드는 건물도 있는데, 그럴 때마다 대부분의 골목 건물이 왜 이렇게 채워지지 못하지?’ 묻고 싶어요. 골목의 환경이 살아난다면 우리는 문화적으로도, 산업·경제적으로도 튼튼해질 거예요. 경제적 효과를 하나씩 만들어서 골목을 채워나간다면 골목경제가 튼튼해지고 문화가 건강해질 거예요. 이 문제에서 우리 한국 사회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는 숨 가쁘게 도로를 건설하고 댐을 건설하고 모자라면 또 집을 지어요. 이러한 것들이 급한 사회가 아닙니다. 품격과 문화, 그것을 떠받아 줄 수 있는 강경한 풀뿌리 경제. 이게 위에서 말씀드린 우리 삶의 건축이 점점 더 중요하게 여겨져야 하고, 취급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국건위는 이러한 건축정책을 바탕으로 각 부처에서 다루는 일들을 조정하고 자문하는 일을 할 거예요. 굉장히 일이 많습니다. 자문위원회라는 게 권한은 없고 할 일은 많거든요. 강제 권한은 없지만 할 일은 굉장히 많은 데라서, 제가 위원장이 되고난 뒤 축하한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축하받을 자리가 아니라고 느껴요. 해야 할 일이 굉장히 많고, 이끌어나갈 방향성을 생각하면 마음이 굉장히 무겁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중요하고 할 일이 많은 자리임이 틀림없으니, 맡은 바를 열심히 수행할 예정입니다.

 

2. 교수님께서는 국가건축 및 도시정책을 총괄하는 국가건축정책위원회에서 오래 활동을 하셨는데요. 5기 위원회에서는 정책조정과 위원장으로 활동하시면서 정책의 지평을 넓히셨습니다. 그간 해오셨던 활동들에 대해 이야기 부탁드립니다.

건축을 잘 모르는, 인터뷰를 읽는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조금 전 이야기와도 연결되는데요. 지금 우리 사회 전체 건축물 중에 한 14퍼센트 정도는 공공건축이에요. 공공건축 중에서 큰 건축물은 시청도 있고 구청사 건물, 미술관, 박물관도 있지만 사실 엄밀히 따져보면 그런 건 몇 개 안 됩니다. 동네마다 있는 우체국, 파출소, 주민센터, 국공립 어린이집, 학교가 훨씬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합니다. 동네를 걸을 때마다 앞서 말한 건축물들을 모두가 쉽게 볼 수 있을 거예요. 이런 것들이 사실은 굉장히 많은 공공건축 중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큰 비중에 비해 퀄리티가 좋지 않습니다. 다세대주택 대부분이 1층은 주차장이고, 2층부터 주택인데 민간에서 저렴하게 짓기 때문에 시공이 부실해요. 저렴한 시공을 한다는 것, 우리 사회의 과제입니다. 질을 올려야 합니다. 민간 건축도 이런 형국인데, 과연 공공건축물은 제대로 짓고 있느냐 질문을 던져볼 수 있겠죠. 공공건축을 제대로 못 짓고 있는데 민간건물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면, 문제가 있잖아요. 소건물은 다 가격으로 입찰해요. 가장 싸게 설계하겠다고 말하는 사람한테 맡기는 것 같아요. 가장 저렴한 곳에 설계를 발주합니다. 과연 설계가 잘 나올 수 있을까요? 싸게 받는 곳에 맡기는데, 디자인 가격을 낮게 책정하겠다는 곳에 발주를 하고 있으니 제대로 짓는 게 과연 가능할까 의문이 듭니다. 시공도 마찬가지고요.

그러니까, 부실업체들이 저가 입찰해서 들어오는 형국인데, 어떻게 설계를 제대로 할 수 있냐는 질문을 던지는 겁니다. 제 목표는 모든 설계를 설계의 질로 경쟁하는 구조로 바꾸는 데 있습니다. 제가 목표로 삼은 가장 중요한 과제 중에 하나였어요. 모든 공공건축에 적용을 하고 싶지만, 차근차근 실행에 옮기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현상공모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설계 경쟁을 시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설계자들이 건축 설계를 제출하면 심사하고 선별해서 해당 설계자에게 건축을 맡기고 계약을 하는 것이죠. 1단계로 설계비 2억 원 이상인 것들, 공사비로 치면 40억 원 정도 됩니다. DDP5천억 원 정도고, 40억 원 정도면 주민센터 정도 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규격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그 정도라고 어림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어린이집 중에 좀 큰 어린이집 정도의 크기, 그런 건축은 설계공모 아니면 하지 못하게 의무화 즉 법제화를 시켰어요. 작년, 재작년 말에 일단 설계비 1억으로 낮췄습니다. 앞으로 점점 넓혀갈 예정입니다. 공모를 하면 행정 부담이 커지기 때문에, 행정편의주의 때문에 가격으로 책정하는 거예요. 간단하면서도 제일 싸게 쓴 사람 뽑으면 되니까요. 그런데 공모로 하면 설계라서, 설계안을 그려야 하는 시간을 주고 몇 사람이 제출하면 심사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일이 훨씬 많아지죠. 그러나 행정비 몇 푼 아끼겠다고 우리의 생활환경을 망치면 안 됩니다. 정부부처에서도 이와 같은 지점의 필요성을 공감하면서, 단계를 조금씩 낮춰가는 중입니다.

 

3. 6기 위원장으로서 활동하고자 방향과 계획 및 지향점이 있다면 이야기 부탁드립니다.

우리나라에 지금 건축이 어떻게 설계되고 있는가에 대해서 예를 들어 큰 공원이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세종시에 중앙공원이 있어요. 공원을 가봤더니 야외음악당이 있더라고요. 공중화장실도 있고요. 그런데 그 건물들 하나하나가 설계가 좋지 않습니다. 왜 설계가 좋지 않을까? 다른 큰 공원에 가보시면 공중화장실도 있고, 관리사무소, 어느 곳엔 야외음악당도 있고 그럴 겁니다. 그런데 대부분 상태가 아름답지 않죠. 왜 그러냐면, 공원을 만들 때 공원설계를 누군가에게 맡기겠죠? 공원설계는 건축설계랑 다릅니다. 조경설계전문가가 따로 있어요. 그 전문가에게 공원설계를 맡깁니다. 공모를 하든, 어떠한 과정을 통해 설계용역을 줄 겁니다. 공원설계를 조경설계전문가가 맡는데, 문제는 그 공원 안에 야외음악당, 화장실, 관리사무소, 매점까지 다 있잖아요. 그런데 용역을 주는 입장에서는 이 모든 것을 다 일괄로 보내달라고 말합니다. 건축설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설계까지 할 수 있을까요? 용역을 받은 사람은 자기가 아는 건축사무소에게 또 설계를 내어줍니다. 이게 현실입니다.

제대로 과정이 진행되려면 공원설계는 조경설계전문가가 맡고, 그 안에 들어가는 건 따로 건축설계 공모를 진행해야 합니다. 공원을 건축하는 데 있어 조경설계와 건축설계를 따로 했다면, 분명 많은 사람들이 야외음악당을 보려고 그 공원에 올 거예요. “공원도 멋지지만, 야외음악당이 걸작이에요.” 하면서 사람들이 분명 찾아올 겁니다. 조경설계와 건축설계를 각각 진행한다면 야외음악당도 멋지고, 공원도 멋지고, 전체가 멋진 공원이 될 수 있겠죠. 하지만 우리나라의 공원에 가면 이상한 조각품이 있고, 화장실을 방문하면 좋은 느낌보다는 추레한 느낌을 받죠. 공원 갔다가 괜히 기분만 망치는 분들도 분명 있을 거고요. 관리의 문제도 있지만 디자인이 너무 조악하게 되어 있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멋진 공원에, 멋진 건물까지 더하면 공원의 분위기가 훨씬 좋을 텐데, 행정비용 조금 아끼려고 조경설계와 건축설계를 따로 발주하지 않고 있어요. 저는 이걸 바로 잡고자 합니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국가가 어촌마을을 가꾸겠다고 어촌뉴딜을 진행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농촌 마을을 정비한다고 치면, 거의 대부분 같은 식으로 진행됩니다. 우선 업체가 받아서 플랜을 짭니다. 선착장까지 포함되어 있으니 어떻게든 설계를 하겠죠? 그런데 가만히 생각을 해 보면, 배 타고 어촌을 갈 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게 선착장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설계를 진행해버리니 선착장부터 좋지 않죠. 선착장을 잘 설계를 해서 멋있다면, 사람들의 첫인상에서부터 어촌은 이기고 들어가는 것인데 이 간단한 이치를 왜 실행하지 않는 걸까요? 행정이, 따로 발주 및 설계하는 그 과정이 인건비가 좀 더 들어간다고 하지 않고 있어요. 저는 이런 부분을 개선해나가고 싶습니다. 이것은 국건위가 해양수산부장관하고 이야기를 나눠보아야 합니다. 따로 발주할 수 있도록 멋진 항구의 사례나 외국의 어촌 사례를 보여주고, 설득해야 합니다. 이런 일들이 첫 번째 저의 목표, 중요한 공공 건축을 아름답게 설계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아름다워서 좋은 게 아니라 그 과정에서 건실한 설계업체가 육성되고 성장하는 산업적인 부분까지 고려가 되는 겁니다. 부실한 업체가 승리하는 사회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산업 풍토가 건강해져야 해요. 저는 동시에 두 가지 효과를 노리면서 방향성을 잡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가장 많은 건축물이 아파트와 학교입니다. 가장 많고, 가장 오래됐기에 그만큼 국민의 시간이 담겨 있는 건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굉장히 이상한 게, 동양이나 서양이나, 옛날이나 지금이나 모든 마을과 모든 도시가 어떻게 만들어져 있냐면 도시공간에 건축물이 서 있어요. 북촌마을을 가든, 파리를 가든 어디를 가든 다 그래요. 골목에 건물이 서 있어요. 골목 옆에 건물이 쭉 있습니다. 인사동을 떠올리시면 쉽게 그려지실 텐데, 골목의 모양을 보자면 건물의 벽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대부분 다 그래요. 그런데 이상하게 아파트 단지만 안 그렇습니다. 아파트 단지는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어요. 길가에 아파트가 안 서 있어요. 그런데 파리는 길가에 아파트가 서 있거든요. 대신 담장이 없습니다. 그냥 들어가면 아파트예요. 세상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마을과 도시가 그렇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아파트단지랑 학교만 유별나요. 우리는 그걸 당연하게 생각하고요. 왜 그러냐하니, 익숙해져서 그렇습니다. 아파트는 다 그렇게 생겼다고 인지하고 있지 않습니까? 다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고, 그게 당연하다고요. 우리나라 주택의 60퍼센트가 아파트입니다. 대략 3만개의 단지로 구성되어 있어요. 달리 말하자면, 우리나라 국민의 60퍼센트가 담장 속에 살고 있다는 말입니다. 각각의 집이 공공기관과 직접 소통하지 않아요. 담장 속에서 주 출입구를 통해야만 사회와 직접 만날 수 있어요. 하지만 직접 만나지 않습니다. 담장 안에 들어 있으니까요.

동네는 다 사유재산이에요. 골목에서 가로등 불이 꺼지거나, 쓰레기를 안 치우면 사람들이 구청장에게 민원을 넣어요. 공공이 잘하는지, 못하는지가 시민들 개개인의 삶에 직접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누구 구청장이 일을 잘한다, 일을 못 한다 이야기하면서 인터넷으로 민원을 넣습니다.

그러나 아파트 단지 안에선 가로등이 꺼져도, 쓰레기를 안 치워도 구청장에게 민원을 못 넣어요. 왜냐, 사유지에 일어난 일이니까요. 아파트에 사는 주민들이 낸 관리비로 고쳐야 합니다. 아파트 단지에 사는 사람과 시민들은 매일의 삶이 공공기관과 직접 연관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보니 자연스레 매일의 동네 삶에 관심이 없어지겠죠. 그렇게 되면 시민사회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이건 중요한 문제이자, 굉장히 심각한 문제입니다. 도시공간이 지저분할 때 세금이 왜 이런데 쓰이지 않냐고 신경을 쓰는 시민이냐, 퍼블릭한 일에 관심을 갖는 시민이냐 아니냐가 결정됩니다. 주변 일에는 관심이 없고, 구청장이 누가 되는 지에는 관심이 없어요. 누가 되든 나의 삶과 전혀 관계가 없기 때문이에요. 시민 사회는 동네에서 시작하는 데, 아파트는 동네에 관심을 두지 않게 만들고 그저 열심히 저축해서 더 좋은 단지로 이사를 해야 된다는 생각만 심어줄 뿐입니다.

특히 이 같은 지점은 모두 자신의 책임으로 돌리게 됩니다. 공동체의 책임이 아니고, 다 자신의 책임으로 돌리게 되는 구조예요. 이게 무서운 일이에요. 학교도 마찬가지로 공공담장을 치고요. 사회에서는 그나마 작게 남아있는 운동장마저 뺏으려고 주차장을 만들고 담장을 없애려고 합니다. 학생 유괴, 성폭력 안전 때문에 학교 문을 잠그고요. 이렇게 폐쇄적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랑 공유를 해야 해요. 지역사회랑 공유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이게 큰 과제입니다. 제가 생각한 방안은, 우리 사회가 학교에 더 줘야 해요. 아파트 단지도 파리의 아파트처럼 지역과 직접 소통하는 아파트가 되어야 하고요. 아파트가 문제인 게 아니라, 단지가 문제예요. 담장으로 둘러싸고 폐쇄적으로 소그룹, 소집단을 만드는 단지가요.

학교도 마찬가지입니다. 학교 운동장을 동네는 호시탐탐 노리고, 교장 선생님들은 뺏기지 않으려고 의식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학교의 환경이 예전과 달리 과밀학급이 많이 사라졌지만, 한 가지 지표를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실외수영장을 갖고 있는 초등학교가 얼마나 될까요? 실내든 실외든, 수영장을 갖고 있는 학교가 1퍼센트밖에 안 됩니다. 반면 일본은 80퍼센트나 돼요. 단적으로 이야기를 한 것이지만, 과학교실이나 도서관 또한 비슷한 퍼센트일 겁니다. 우리네 학교는 학교 자체의 시설이 좋지 않은 편이에요. 시설을 확충해주어야 합니다. 자꾸 열린 학교를 만들라고 하면서, 운동장을 지역 사회가 어떻게 같이 쓸까 고민만 하는 건 가뜩이나 부족한 것을 뺏어가는 것 밖에 되지 않죠. 그래서 교장 선생님들이 어떻게든 문을 닫으려고 하는 겁니다. 이런 방식이 아니라, 더 주어야 합니다. 주는 방법은 지역사회에서 학교로 들어가면서 열어라! 개방해라!’가 아니라, 학교 옆에 뭘 주면서 열게 나오게 만들어야 합니다. 예를 들자면 학교 옆에 작은 도서관을 만들어주는 겁니다. 도서관을 이용하려면 바깥으로 나올 수밖에 없겠죠? 그 옆에다 수영장을 지어주고요. 수영장을 운동장에 짓지 말고, 학교 옆 건물에 건설을 하는 겁니다. 정작 학생은 못 쓰면서 지역주민과 같이 사용하라고 하면, 학교가 개입해서 지역사회를 연계하는 꼴이 되어버립니다. 아이들이 중심이 되어 연계하면 돼요. 옆에다 공원을 지어줘서 애들을 뛰어놀게 만드는 거죠. 공이 담장 밖으로 나갈까봐 펜스를 쳐놓는 것이 아니라, 큰 운동장을 공원 속에 만들어주고 마음껏 놀게 해야 해요. 그러면서 아이들이 야외 수업 때문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아이들이 바깥으로 나올 수 있게끔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신도시가 많이 생기고 있습니다. 3기 신도시의 학교도 기존의 학교들과 같이 공이 멀리 날아 갈까봐 높게 펜스를 쳐야 할까요? 5-6미터 높이로, 더욱 더 높은 담장을 쌓아야 할까요? 지금과는 다른 모습으로 학생들이 좀 더 풍요로운 시설을 향유할 수 있고, 지역사회 입장에서는 아이들이 학교 밖으로 나와서 도서관을 이용하고, 넓은 공원에서 뛰어놀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합니다. 지역사회에서 학교와 아파트 단지가 대표가 되는, 그런 열린 도시가 필요합니다. 구청과 국회로 상징되는 관공서들을 떠올려 봅시다. 시민들은 뒤에 물러서 있어요. 시민들은 뒷문으로 다니고, 국민의 손발이라고 자처하는 국회위원들은 정문으로 차를 타고 다닙니다. 공공청사들도 도시와 가까워지게 해야 해요. 잠시 이야기가 옆으로 조금 샜지만, 가장 중요한건 아파트단지와 학교입니다. 우리 생활환경에 가장 밀접하게 닿아있는 것이기 때문에, 어떻게 할 것인지 다각도로 깊은 고민을 해봐야합니다. 3기 신도시에서 앞서 이야기한 부분들을 좀 바꿔보려고 합니다. 이걸 주된 과제로 삼고 있습니다. 임기가 2년이라는 게 결코 길지 않기 때문에, 임기동안 전력을 다해 과제를 수행하고자 합니다. 모든 것을 다 어루만지고 싶지만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고, 앞서 말씀드린 이야기들을 가장 중요한 과제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4. 그간 다양한 직책과 과제를 수행하시면서 교수님만의 가치관 및 철학이 생기셨을 듯한데요. 건축에 있어 교수님만의 철학 및 가치관이 궁금합니다. 더불어 교육자로서의 철학 및 가치관에 대해서도 이야기 부탁드립니다.

제가 아무래도 건축학과 소속이다 보니 건축을 중심으로 이야기할 수밖에 없네요.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사회과 굉장히 다원화되어 있습니다. 한 가지 가치를 일방적으로 이야기하던 시절이 지났어요. 60년대 이후로, 소위 타자들의 존재를 주로 다뤘어요. 나와 타자의 차이를 인정하며, 다양한 주체들의 다양한 가치관들이 서로 소통하죠. 나와는 다른 가치관, 지식, 기회들을 통섭하고 소통해나가요. ‘통섭이 키워드인 이유가 다양성을 인정하기 때문이에요. 한가지의 진리가 옳으면 그것만 배우면 되지만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된 것이 불과 얼마 되지 않았죠. 다양한 가치들이 서로 원활하게 소통이 되도록 만드는 것, 이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다양한 가치를 인정하고 다른 사람, 타자와 나의 가치관 차이를 인정해야 해요. 나와 다른 사람들이 이 사회를 구성하고 그 속에서 또 다른 차이를 갖고 있는 존재로서 살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해요. 서로 상호작용을 하면서,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존재가 되는 일이 우선이에요. 이게 요즘의 현대사회에서 굉장히 중요한 도덕 혹은 윤리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돕는 것이 건축과 도시를 만드는 일입니다. 이는 굉장히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건축이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의 존재를, 나와 다른 타자들과 다양한 가치를 나누는 것을 잘되게 만드느냐 방해하느냐를 결정짓습니다. 앞서 이야기 했듯, 담장을 만드는 것은 방해하는 일입니다. 사람들을 서로 만나지 못하게 하니까요. 접속하고 소통하는 것을 가로막고 방해하는 거예요. 타자간 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것, 그것이 건축의 일입니다.

건축을 가르치고 배울 때도, 타자간 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건축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전제로 합니다. 제가 건축을 가르치기 전에, 학생들이 건축을 배우기 전에 그런 가치관을 먼저 가져야겠죠. 수업 시간에 자주 강조하는 것 중 하나가 나를 포함한 학생들 하나하나, 모든 개인은 우주에서 유일한 존재라고 자주 이야기합니다. 다 다르고 차이가 있죠. 이걸 먼저 인정해야 합니다. 다른 한 사람 한 사람이 들어가서 살고 있는 게 집이고, 그 사람들이 밖으로 나와서 공유하는 게 이 도시예요. 그 모습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는 다 다릅니다. 우리의 아파트들을 보세요. 집이 구별되지 않고 다 똑같이 생겼어요. 모든 사람들은 우주에서 유일한 존재인데, 왜 티가 안 날까요. 그에 비해 단독주택은 다 다르게 생겼고, 주택에 사는 사람의 삶의 모습을 표출하고 있어요. 대문 색깔, 빨래, 화분을 통해서요. 매 순간 같은 동네에서 살지만, 모두 나와는 다른 삶을 살고 있고 서로 차이가 있다는 이야기죠. 우리는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갖고 우리는 살아가고, 그것이 집의 환경에서 드러납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어울려서 매 순간 살고 있다는 것을, 매 순간 주변 환경이 자각시켜줘요. 반면 아파트는 그렇지 않고, 다 똑같죠. 모두 다를 거라는 걸 알고는 있지만, 지각시켜주지 않고 추상화를 시킵니다. 시각적으로 지각이 되질 않으니 우리는 모두 다른 존재다를 한 번 더 생각해야 , 다르구나라는 걸 알게 됩니다. 나와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걸 직관적으로 느끼게 해주는 삶과 추상적인 지식으로서 떠올려야 이해되는 환경은 실제 삶과는 달라요.

이런 삶의 환경을 직관적으로 만드는 건축을 교육해야 해요. 어떤 지점에선 저 아파트단지를 크리틱, 비평해야 합니다. 건축은 개인의 가치관과 상통됩니다. 사람이 사는 걸 설계하는 분야면서, 일상적인 삶에서의 삶에 대한 가치관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설계에서 공부해야 할 것들이 많아요. 다른 공학이나 학문이랑 다르죠. 다른 공학은 일상과 딱 직결되지 않는데, 건축은 완전히 직접 연결되어 있어요. 나의 가치관, 즉 개개인의 가치관이 교육의 방향이고 공부의 방향이 될 수 있는 학문이 바로 건축입니다.

 

5. 명지대학교에서 미래를 준비하며 학업에 열중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조언과 격려의 말씀 부탁드립니다.

쉽지 않을 텐데, 미래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우선 박수를 보냅니다. 세상이 점점 힘들어지고 있지 않습니까? 가장 큰 요인이 뭘까요. 불안정해지고 있다는 겁니다. 당장의 모든 청년들이 직업을 갖기가 어렵고, 취업이 어렵다는 문제뿐만 아니라 막상 취업을 해도 직장의 안정성이 보장되기가 힘든 사회입니다. 이러한 것을 여러 단어로 표현할 수 있는데, ‘퇴출의 공포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쓸모없어짐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속된 말로 나는 언제 짤릴지 몰라요. 퇴출되었을 때, ‘이 사회에서 나는 더 이상 쓸모가 없다는 느낌이 주는 불안감이 분명 있을 거예요. 아직 학교에 몸담고 있는 학생들은 직접적으로 느끼고 있진 않겠지만, 그래도 다들 막연하게 불안감을 갖고 있을 겁니다. 주변을 둘러보았을 때 취업이 되더라도 취업이 인생 전반을 보장해주는 것 같지 않고, 그래서 불안함이 생기죠. 많은 사람들이 스펙을 쌓아라, 이야기 하고 있지만 이게 멀티를 강요하는 것 같기도 해요. 이것도 잘해야 하고, 어학도 잘해야 하고, 스킬도 많아야 한다는 식의 스펙이죠. 한 가지의 전문능력이 뛰어난 것을 기대하는 것보단 여러 가지 일을 얕게 잘하는 것을 기대하는 사회 분위기가 있어요. 학생들 또한 불안하니까 이것저것 자꾸 하게 되고요.

이런 사회일수록, 저는 자신의 전문 분야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소위 장인정신이 필요합니다. 자신의 주특기라 표현해도 좋습니다. 자신의 전공에 충실해서 전공 분야의 장인이 되는 것이죠. 내가 다른 사람으로 대체될 수 없게끔, 대체 불가한 능력이 필요해요. 워드프로세서가 5급이고, 어학 토익 850점인 것은 쉽게 다른 사람으로 대체될 수 있는 능력입니다. 다른 신입사원으로 금방 대체될 수 있는 능력이죠. 저 또한 후배들이 무서워요. 다들 갈고 닦아서 경쟁이 심해지니까요. 대체될 수 있다는 공포, 이 공포가 우리를 이것저것 하게 만드는데 사실 이것저것 하는 것은 대체될 수 있는 얕은 것입니다. 오히려 이런 시대일수록 저는 대체할 수 없는 깊이 있는 전공공부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대체될 수 없는 장인적인 능력을 갖고 있는 존재가 되는 것, 이걸 현대사회에서 미래를 준비하는 우리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에요. 지향을 하는 것과 안 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앞서 말한 마인드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낮고 얕으면서 다양한 능력을 갖추려는 압박감에 휩쓸려 다니지 마십시오. 자기 자신의 메인을 가져야 합니다. 주 전공을 깊숙이 공부하며, 쉽사리 대체될 수 없는 무게감의 존재가 되기 위해 노력하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자신감을 갖고 살아갔으면 좋겠어요. 쉽사리 조언을 한다는 것도 조심스러운 일이지만, 여건이 점점 어려워지는 사회일수록 이런 가치가 결국 승리한다고 생각합니다.

 

6. 앞으로의 계획이나 포부가 있다면 이야기 부탁드립니다.

지금 제가 학교에서 맡고 있는 보직이 건축대 학장이니까, 건축대학의 교육에 있어 제가 작은 힘이라도 보태 더 나은 교육으로 이끌어나가고 싶습니다. 그것이 제게 주어진 일이고, 현재에 충실해야 할 지점 중 하나입니다. 물론 새로 맡은 일도 열심히 할 예정이고요. 멋진 포부는 없고, 그저 맡은 바 충실히, 현재에 충실하겠다는 것 외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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