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지의 성장과 발전을 함께한 편종근 교수(토목환경공학과 명예교수)를 만나다!

  • 분류동행
  • 작성일2020.04.28
  • 수정일2020.05.04
  • 작성자 김*현
  • 조회수2951
명지의 성장과 발전을 함께한 편종근 교수(토목환경공학과 명예교수)를 만나다! 첨부 이미지

 

편종근 교수는 1976년 명지대학교 공과대학 토목환경공학과 교수로 부임하여 기획관리실장과 산학협력단장 등을 역임하고, 대외적으로는 제41대 대한토목학회 회장, 한국해양과학기술협의회 회장, 한국해안해양공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7년 전 정년을 맞은 편 교수는 명지와 후학들을 위해 꾸준히 발전기금 기부 및 유치에 힘써 왔으며, 정년 이후에도 선후배 교수와 졸업생들의 역량을 모아 토목환경공학과 교수회 장학금을 조성하였다. 45년 간 명지의 성장과 발전에 함께한 영원한 명지인 편종근 교수님을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1. 안녕하세요.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그동안의 어떻게 지내셨는지 교수님의 근황이 궁금합니다.

매주 수요일이면 고등학교 동창들을 만나 함께 청계산 등산을 갑니다. 다른 등산모임에도 참여하는데, 매주 토요일마다 참여합니다. 첫째 주 토요일의 경우, 북한산과 도봉산을 교대로 가고 두 번째, 세 번째 토요일에는 대모산, 구룡산, 우면산 등 가까운 산에 갑니다. 마지막 주 토요일에는 서울공대 토목공학과 등산모임인 서토산에 참석합니다. 일주일에 이틀 정도를 등산에 할애하고 있습니다. 계속 취미생활을 하려면 건강과 체력이 밑바탕이 되어야 하니까요. 등산과 더불어 일주일에 한 번씩 요가를 배우고 있습니다. 요가 덕에 몸이 많이 좋아졌어요. 요가를 시작하기 전에는 세수하려고 구부리면 허리가 아파서 움직이기 힘들었는데, 요가를 하고 나니 허리 아픈 게 싹 사라졌어요. 운동의 중요성을 새삼 느끼며 건강하게 살고 있는 게 요즘 저의 근황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 또 하나의 근황이 더 있네요. 최근 일본어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주변 친구들을 살펴보면 은퇴 이후 공부를 더 이상 하지 않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정년 이후에도 무언가를 계속 꾸준히 공부하고 싶었고, 그래서 일본어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제 뒤에 있는 이 책장은 연구실에서 쓰던 책장입니다. 원래는 책이 한가득 꽂혀 있었지만, 제자들에게 대부분의 책을 나눠줘서 책장이 비었어요. 지금 책장의 빈 공간을 채운 것은 음반입니다.

레너드 번스타인이라는 유명한 작곡가 겸 지휘자가 있습니다. 대표작으로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라는 뮤지컬이 있고요. 번스타인은 58년부터 70년까지 뉴욕필하모니에서 청소년 음악회를 개최했습니다. 무려 25회에 걸쳐서요. 청소년 음악회의 DVD를 보면서 제가 직접 자막을 옮기기도 하고, 제자들의 도움을 받은 자막을 제가 감수를 해서번스타인의 청소년음악회라는 소책자를 만들었습니다. 이렇듯 음악도 저의 근황에서 빠질 수 없는 한 꼭지입니다.

2. 교수님께서는 정년 이후에도 토목환경공학과 교수장학회를 통해 장학금을 기부하시고 계신데요. 201912월에도 토목공학과 장학금으로 500만원을 쾌척하셨습니다. 지속적으로 장학금을 기부하시게 된 계기에 대해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보통 대부분 정년을 맞이하면 정년식 혹은 정년 기념 파티를 개최합니다. 큰 호텔을 빌려 행사를 진행하고, 400여명 정도가 참석합니다. 정년식은 하나의 관례이자 의례적인 절차였어요. 하지만 저희 나이대로 오면서 규모가 축소되었습니다. 저 같은 경우 교수 취임을 빨리 한 편입니다. 그렇기에 석사, 박사 제자들이 많아요. 토목환경공학과 수공학연구실에서 매년 한 번씩 발행하는 책자가 있는데, 최근 발행된 책자를 보면 M127이라는 표시가 있습니다. 이는 석사 127명이라는 뜻입니다. 다른 교수님들 제자도 포함한 숫자이지만, 아마 70퍼센트 이상은 제 제자일겁니다. 박사는 18명 정도 되고요. 아무튼 정년을 앞두고 제가 먼저 여러 제자들에게 기부를 제안했어요. 정년 기념식을 하는 대신 300만원, 100만원, 50만원, 10만원 등 형편되는대로 금액을 모아서 장학금을 조성하자고요. 그리고 먼저 정년을 맞은 김감래 교수와, 함께 정년을 하게 된 박용원 교수의 흔쾌한 동의로 교수장학금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셋이서 500만원씩을 내 놓았고, 그 후로 정년을 한 여운광 교수와 박홍용 교수도 동참을 해 주었습니다

박용원 선생하고 저는 함께 대학을 입학했는데, 이번에 은퇴를 하면서 생각 일치를 본 점이 둘 다 같이 기념식을 하지 말자는 것이었어요. 그리고 논문집 발간하는 일도 하지 말자고 의견을 통일했습니다. 대신 캠퍼스를 위해서, 더 나아가 크게 보자면 지구와 환경을 위해서 나무를 심자고 박용원 교수가 제안했습니다. 토목환경관 앞에 단풍나무 두 그루가 있는데, 저와 박용원 선생이 한 그루씩 갖다 심은 겁니다. 그렇게 은퇴할 때 세 가지 건에 대해서 의견 일치를 봤어요. 기념논문집도 안 하고 정년 기념식도 안 하고, 그저 나무 한 그루씩 심었을 뿐이죠.



3. 쾌척한 장학금이 어떤 용도로 쓰였으면 하는지 바람이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딱히 정해져 있지 않아요. 515일이 스승의 날인데, 이 날 토목공학과 학부생들이 선생님들을 모시고 스승의 노래를 부르는 등의 간단한 행사가 있어요. 이날 학부생에게 장학금이 지급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대학원생들은 가을에 지급됩니다. 총 두 번으로 나눠 장학금을 전달하는데, 학부생은 학과에서 별도로 선정한 두 명의 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대학생원생의 경우에는 분야별로 돌아가면서 주고 있고요. 장학금 받은 친구들이 더 열심히 학업에 정진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4. 학교와 오래 연을 맺으시면서 명지의 성장과 발전을 함께하셨는데요, 학교에서 다양한 직책을 맡으시고 학생들을 지도하시면서 교수님만의 가치관이 생기셨을 듯합니다. 이에 대해 이야기 부탁드립니다.

옛날 대학교에서는 연구 개념이 희박했어요. 연구를 위해 필요한 여러 가지 제반 여건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연구보다는 학생 가르치는 일이 주된 업무였습니다. 국가가 발전하면서 연구비도 늘고, 연구 필요성도 높아졌죠. 그래서 현재는 옛날과는 반대로 연구가 위주이고 교육이 상대적으로 밀려나고 있다고 볼 수 있죠. 저는 중간 세대에 끼어 있습니다. 옛날 풍토도 알고 요즘 풍토도 알기 때문에 양쪽 입장을 다 수용하되, 젊은 교수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대학교수라면 모름지기 사람을 키워야 합니다. 제자를 키우는 것이 1등 목표예요. 그 다음 목표가 연구고요. 이 점을 젊은 교수들에게 당부하고 싶습니다. 요즘 젊은 교수들을 보면 제자들에게는 소홀하고 연구만 잘하면 된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는 듯합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76년에 명지대학교에 취임을 했는데 당시의 학생들 이름과 얼굴을 전부 기억해요. 76년에서 80년대 초까지는 완전히 꿰차고 있습니다. 그래서 선생과 제자간의 끈끈한 유대가 있어요. 당시 학생들에게 저는 작은 형 정도의 나이대여서 더 그랬을지도 모릅니다. 관계가 굉장히 돈독했고, 끈끈한 사제지간의 관계는 그 어떤 것보다 값지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의 경우에는 연구도 중요하지만 제자 양성이 더 우선이라고 생각하기에, 이 가치관을 강조하고 싶네요.


5.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의 증조할아버지께선 66발가락이셨대요. 기인이셨죠. 당대에 만석을 이루셨대요. 논 한 마지기에 쌀 두 가마가 나오는데, 이게 만석이 되려면 5천 마지기에 달하는 농토가 있어야 하잖아요? 당시 부의 척도는 쌀이 몇 가마 나오느냐에 따라 정해졌는데, 제 증조할아버지께서 만석을 이루신 거죠. 이후 증조부는 전동 조계사 객사에 묵으셨다가 대구찰방, 그러니까 요즘 식으로 말하면 대구역장이죠. 찰방벼슬을 얻으셨나 봅니다. 선견지명이 있으셔서 아들인 제 할아버지를 일본 명치대학에 유학까지 보내셨습니다. 여러 방면에서 뛰어난 두각을 보이셨는데, 특히 한시를 너무나 유려하게 잘 쓰셨습니다. 증조할아버지께서 직접 쓰신 한시들이 있는데, 우선 이 시들을 한문전문가에 의뢰해 한글로 번역을 해 놓았습니다. 음악공부를 한 10년간 채우고 난 후 증조할아버지의 한시를 본격적으로 공부하는 것이 저의 계획이고요.

첨부파일
첨부파일이(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