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지방검찰청 부장검사 윤병준 동문(법학 97졸)을 만나다!

  • 분류동문
  • 작성일2020.12.29
  • 수정일2020.12.29
  • 작성자 김*현
  • 조회수488
인천지방검찰청 부장검사 윤병준 동문(법학 97졸)을 만나다! 첨부 이미지

 

윤병준 동문 온라인 진로특강이 925() 인문캠퍼스 본관 3층 디지털미디어학과 스튜디오에서 진행됐다. 코로나19 확산 방지 및 예방을 위해 동영상 촬영 후 명지대학교 공식 유튜브에 영상( https://youtu.be/LxI7zqjTJ4s)을 업로드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윤 동문은 1993년 명지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하여 1997년 졸업 후 수원지방검찰청 검사, 대검찰청 검찰연구관, 창원지방검찰청 특수부 부장검사, 창원지방검찰청 형사 제3부 부장검사,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 수사지원과장 등의 직책을 역임하며 검사 외길을 걸어왔다. 현재 인천지방검찰청 외사범죄형사부 부장검사로 재직하며 부정부패와 맞서고 있는 윤병준 동문을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1. 안녕하세요.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윤병준 동문께서는 올해부터 인천지방검찰청 외사범죄형사부 부장검사로 재직 중이신데요, 본인 소개와 함께 외사범죄형사부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부터 소개하자면, 저는 명지대학교 93학번으로 97년도에 법학과를 졸업했습니다. 현재 인천지검 외사형사부라는 곳에서 부장검사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외사형사부라는 곳은 인적·물적인 모든 국제거래 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유형의 범죄들을 전담하는 곳입니다. 공항이나 항만 관련한 세관, 세관에서의 밀수, 외환 관련된 범죄 등을 다루기 때문에 세관과도 연관이 됩니다. 요즘 난민 문제, 외국인들의 불법체류 문제도 많이 발생하는데 이런 출입국 관련 문제도 외사형사부에서 처리합니다. 인천지검으로 가기 직전에는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라는 곳에서 수사지원과장이라는 직책으로 일했었고, 그 직전에는 창원지검에서 특수부 부장검사로 근무해서 지금 있는 곳이 부장검사로는 세 번째입니다. 창원지검 전에는 중앙, 청주나 포항, 수원 등등 여러곳에서 십오 년 정도 평검사로 근무했었습니다.



2. 윤병준 동문님의 대학생활이 궁금합니다. 더불어 인상 깊었던 일화가 있다면 몇 가지만 이야기 부탁드립니다.

먼저 되묻고 싶습니다. 요즘 학생들의 대학 생활이 어떤지 말입니다. 요즘 우리나라 전체, 세계 전체가 그렇듯이, 몹시 고달프고 힘들 것 같아요. 고학년 혹은 예비역 후배님들께서는 취업 문제로 여러 가지 어려우실 것 같고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코로나19로 인해 1년 가까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지 않으니 학생분들이 몹시 고달프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93년부터 97년까지, 4년 동안 대학 생활을 할 때 물론 여러 가지 꿈과 낭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때 대학 생활을 하던 저도 무척 고달팠던 것으로 기억이 됩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저 같은 경우는 군에 빨리 다녀올 것인지, 아니면 사법시험을 준비할 것인지 말 것인지, 이런 고민으로 1학년, 2학년을 보낸 것 같습니다.

그러다 2학년 2학기쯤 군대를 미루고, 병역을 연기한 뒤 사법시험을 준비하고자 학교 고시원에 들어갔습니다. 지금의 자리는 아니었고, 인문캠퍼스 뒤편에 허름한 작은 건물 하나가 있었습니다. 거기가 소위 말하는 고시반이었습니다. 그 곳에서 행사, 사시, 공인회계사 CPA 등등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모여서 숙식을 해결했습니다. 도서관 본관 9, 10층 또한 이용하였고, 중간에 식사나 잠은 고시반에서 같이 해결했어요. 1년 반쯤 그렇게 생활하다가, 3학년 후반쯤 옮기게 되었습니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당시에도 이미 학원 수강이라는 게 되게 유행을 했었어요. 그때는 신림동에 고시촌이라는 곳이 있었고, 저는 3학년 가을쯤에 짐을 다 싸서 신림동으로 갔습니다. 지금도 뚜렷하게 생각이 납니다. 책과 옷, 이불들을 제일 큰 등산용 배낭에다 꽉꽉 눌러 채우고, 그걸 어깨에 메고 양쪽 손에 보따리를 한가득 들고 542번 버스를 탔습니다. 그 버스는 지금도 있을 겁니다. 신림 9, 거의 처음 가는 동네였죠. 관악산 아래에 있는 고시촌, 1.5평 정도 되는 방에다 짐을 풀고 졸업할 때까지 소위 얘기하는 고시촌 생활을 했습니다.

1학년, 2학년 때는 놀면서 군대에 갈 것인지, 사법시험을 치를 것인가에 대한 고민, 그다음 2학년 후반부터는 고시원에 들어가서 예비역 형들, 경영학과나 행정학과나 법학과 선배들이랑 함께 도서관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를 했었고요. 3학년 때는 졸업할 때까지 계속 신림동에 있었기 때문에 대학 생활이 어땠는지에 대한 물음에 대해서는 저도 무척 고달팠다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또 에피소드 겸 여러분들에게 참고가 될까 말씀을 드리자면, 저는 97년에 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솔직히 말씀을 드리면, 저는 사실 삼수를 하고 명지대에 입학했습니다. 97년 졸업할 때쯤 되니까 나이가 상당했죠. 97년에 사법시험은 1차도 합격이 안 된 상황이었고, 군대에 언제 갈 것인가 하는 커다란 문제가 있었어요. 제가 가족이 되게 많은데, 그 중에서 제일 귀한 막내 아들입니다. 그래서 졸업식이라고 누나들과 부모님이 다 오셨어요. 그러나 저는 마음이 편치 않았죠. 졸업은 하는데 해결된 건 하나도 없고, 군대에 갈 일만 남은 것 같고 해서 졸업을 기쁘게 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부모님이랑 가족에게 아주 냉담하게 대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식사도 안 하고 가족들을 돌려보내고, 저는 신림동으로 바로 갔던 기억이 납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상을 치르면서 사진을 정리하는데 졸업식 때 찍은 사진이 있더라고요.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사진을 찍었더군요.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여러분들과 제가 비록 다른 세대지만, 저도 여러분과 같은 평범한 사람이라는 겁니다. 평범한 사람이 정체성을 세우고, 세상으로 나갈 준비를 하는 게 20, 바로 여러분들이 지금 몸담고 있는 시기인 것 같습니다. 이때는 분명 혼란스럽고 불안하고 많은 방황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그만큼 젊은 시기이기 때문에 마음이 순수하고 깨끗합니다. 그래서 훨씬 더 큰 꿈을 꿀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꿈을 위해서 노력하는 열정이나 에너지 넘치는 긍정적인 면이 부정적인 마음과 섞여 격렬하게 상호작용하는 시기가 바로 대학 생활 시기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렇기에 지금 여러모로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상태로 방황하는 후배님들이 계시더라도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오히려 바람직한 현상이니 잘 견뎌내시면 좋겠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3. 윤병준 동문께서는 약 2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검사 외길을 걸어오셨는데요, 학창 시절에 검사 외에 다른 진로를 생각하셨던 적은 없으신지 여쭙고 싶습니다.

우리가 어떤 일, 어떤 직업을 가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사회 경험이 부족한 대학 시절에 하기에는 아주 모호하고 어려운 주제인 것 같아요. 제가 그랬습니다. 제가 부장검사이니 법조인을 오랫동안 꿈꿨을 것이라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 같지만, 전혀 아닙니다. 법학과에 대한 생각은 고등학교까지만 해도 전혀 없었어요. 검사가 되겠다는 결심은, 사법시험 합격하고 나서 연수원 2년 수료를 마치는 그 마지막 순간의 선택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어려서부터 제가 법조인을 꿈꾸고, 정의로운 검사를 꿈꾼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상황에 맞추어서 선택과 적응을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렸을 때부터 뚜렷한 꿈을 가지고 성취하기 위해 노력하죠. 그렇게 해야 한다고 선생님도 어릴 때부터 많이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제가 지금까지 경험한 인생으로 보면 어릴 때 꿈을 성취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어요. 그리고 저는 자꾸 그렇게 얘기하시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이것은 아주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상황에 따라서, 여건에 따라서 꿈은 계속 변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어요.

여러분은 지금 상황에서 하고 싶은 일이 없을 수도 있어요. 그리고 지금 꿈이 뭐냐고 물었을 때 대답을 못할 정도로 막막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그게 자연스럽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진지하게 탐색하는 마음 자세입니다. 현재 하는 일이나, 하고 있는 공부에 대해 긍정적인 마음을 갖는 것, 그리고 상황에 대처하는 열린 마음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긍정적인 마음으로 현실에 충실하다 보면 자기가 나아갈 바른 길이 보일 것이라 말씀드리고 싶어요.

사법시험을 보겠다는 결심 후 어려움이 있었지만, 졸업 후 2년 뒤인 99년에 합격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때 다른 진로에 대한 고민은 없었습니다. 그때도 마찬가지고 앞으로도 마찬가지로 학생 여러분들께서도 열린 마음, 긍정적인 마음으로 상황에 맞게 신중하게 탐색을 하시다 보면 여러분의 진로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4. 긴 시간 검사로 재직하시면서 검사로서 사는 삶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셨을 것 같습니다. 보람이 느껴지는 순간도 있었을 것 같고요. 이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는 지금 현직 검사이기 때문에, 그리고 요즘 요 몇 년간 검찰청이 상당히 시끄러웠기 때문에 검찰 혹은 검사가 여러분에게 어떤 느낌인지, 어떤 평가를 하고 어떤 이미지를 갖는지 궁금합니다.

우선 한 가지만 말씀드리면, 법조인이 아닌 사람들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검사를 접하는 경우가 제일 많을 것 같습니다. 어떤 검사가 어땠다더라 하는 언론 보도 내용이 좀 더 사실적으로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고요. 영화나 드라마 같은 매체에서의 검사와 실제 검사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검사가 나오는 영화나 드라마는 잘 안 봅니다. 검사는 매우 보람 있고, 과거와 현재를 통틀어 사회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직업입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봤을 때는 욕을 먹기 쉽고, 업무량이나 처리해야 하는 사건의 무게감이 커서 힘들고 고달픈 직업이기도 합니다.

법조인이 되고자 하는 후배님들 외에 다양한 후배님들에게도 공통적으로 할 수 있는 말이 무엇일지 생각해봤습니다. 검사로서도 가장 중요한 지점인데, 검사는 설득하는 직업입니다. 한 마디로 설명하라고 할 때, 저는 검사를 설득하는 직업이라고 답할 수 있어요. 검사가 뭘 설득할까, 의아하게 생각하시는 분들을 위해 제가 설명을 해보겠습니다.

검사실, 즉 검사가 머무르는 방에는 수사관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는 두 명, 많을 경우에는 열 명도 있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건을 처리할 때 그 수사관들과 마음이 통해야 일이 해결됩니다. 사건을 열심히 처리하도록 수사관들과 소통을 해야 하는데, 소통하고 공감을 하도록 만들 수 있는 사람은 그 검사실의 검사예요. 그러니까 제일 먼저 설득해야 할 대상은 자기 방에 있는 수사관들입니다.

두 번째로는 어떤 사건을 놓고 보았을 때, 사건을 잘 해결하기 위해서는 동료 검사들의 응원이 필요합니다. , 그 사건? 해 볼 만하다, 이런 마음이 들게끔 만들어야 합니다. 동료 검사들이 삐딱한 시선으로 보면서 회의할 때 자꾸 공격한다고 가정해봤을 때, 그때는 될 일도 안 됩니다. 구체적으로 사건 해결과는 관련이 없을지 몰라도 나와 같은 공간에서 근무하는 동료 검사들을 설득해야 하는 지점은 무척이나 중요합니다.

세 번째로, 언론 보도에서는 검사가 여러 가지 일을 혼자 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독립 관청이다, 단독 관청이다 이야기를 합니다. 일부는 맞긴 하지만, 틀린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만약 검사가 아무리 생각해도 정말 이게 옳다는 판단이 들었을 땐 나중에 자기가 책임진다는 전제로 상급자 없이 법원에 기소할 수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는 독립적이라고 볼 수 있지만, 보통의 경우에는 처리 과정에서의 결재 라인들이 있습니다. 평검사가 있으면 부장검사가 직속 상급자고, 부장검사 위에는 차장검사가 있고요. 차장검사 위에는 검사장이 있어요. 또 아주 중요한 사건일 경우에는 대검찰청으로 갑니다. 대검찰청에서도 관할 부서가 있어요. 반부패 사건이면 반부패부, 형사 사건이면 형사부가 있죠. 최종적으로는 검찰총장님까지 갈 수도 있고요. 이 모든 과정에서 중간의 누군가를 제대로 설득하지 못하면, 사건 수사를 제대로 진행하기 어렵습니다. 할 명분이 사라져요. 검찰 내부에서만 본 설득 대상자들이 이렇게 많습니다.

외부에도 설득할 사람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수사 지휘권 문제로는 경찰, 그리고 그 외에도 외사범죄에 관련된 관세청, 출입국관리청 등 수많은 특사경들이 있거든요. 금감원이나 금융위 등등. 그 사람들도 항상 사건으로 만나고 사건으로 소통하고 사건으로 서로 설득해야 하는 관계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다음으로는 법원입니다. 법원에 판사님들이 계시죠. 검사가 사건을 기소했을 때, 최종적으로 사법부의 판단을 받아야 하기에 판사님도 아주 중요한 설득의 대상이 됩니다. 법정에서 검사가 자기 마음에 안 든다고 소리친다거나, 삐딱하게 말한다거나 한다면 사건 해결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진행되지 않겠죠. 공개된 법정에서 그 사건을 재판할 검사를 설득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검사의 중요한 능력 중 하나입니다.

약간 시각을 달리하면 사건에는 여러 이해 관계인들이 있습니다. 법률적으로는 사건 관계인이라고 하는데, 당장 형사사건에는 죄를 의심 받고 있는 피의자가 있고, 죄를 입증하는 데 필요한 참고인들이 있어요. 법정으로 갔을 땐 증인이죠. 또 피의자들마다, 혹은 한 피의자에 여러 명의 변호인들이 선임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와 같은 사건 관계인들을 설득하지 못하고 승복시키지 못한다면 검사는 평생 원망을 받거나, 고소·고발까지도 가게 됩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나와 대결하는 피의자까지도 설득과 승복의 대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서로 이해관계가 다르고 직책이 다르고 입장이 다른 수많은 사람들 한가운데에 검사가 서서 설득시키고, 승복시키고, 이해시키며 공감을 얻는 게 검사가 하는 일입니다. 법률적으로 몇 년을 구형하고 무슨 법을 적용하고 이런 것들은 아주 기술적인 거라 별 게 아닙니다. 결국은 설득이 검사의 일입니다.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은 어떤 진로를 선택하든 모든 영역에서, 모든 직업에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가장 중요한 문제가 설득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대답이 길었습니다만, 저에게 검사로서의 삶이 무엇이냐 물으시면 수많은 사람을 설득하는 게 바로 검사로서의 삶이라고 대답하고 싶습니다.



5. 검사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 혹은 에피소드가 있다면 이야기 부탁드립니다.

사건을 직접 수사하는 것은 평검사 시절입니다. 대부분 검사들은 약 15년 정도의 평검사 기간을 거치게 됩니다. 저도 대략 15년 정도 평검사로 근무를 했고요. 조폭, 마약 사범들을 수사하고 처벌하는 강력부, 금융 사건이나 정치, 뇌물 사건 등을 다루는 특수부 등의 부서에서 근무하면서 언론에서 많이 노출된 사건들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습니다. 또 부장으로 승진하기 직전 기간에는 대검찰청의 연구관이라는 신분으로 근무를 했는데, 그때 제가 있던 곳은 감찰본부였습니다. 대검 감찰본부라는 곳에서 26개월 동안 근무하면서 그 기간 동안 사회적으로 떠들썩했던 검사들의 비리 같은 것들도 직접 조사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별로 기억에 남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건들에 대해 누구에게 얘기하고 싶은 마음도 없습니다.

형사부 기준, 검사들은 평검사 시절에 한 달 평균 200에서 300건 정도의 사건을 처리합니다. 특수부나 강력부는 하나의 사건을 두 달에서 세 달 정도까지 수사하기도 합니다. 검사에게 사건이라는 건 그야말로 업무예요. 지나가는 겁니다. 예를 들면 제가 작년에 온 힘을 기울여 밝혀내려고 애썼던 사건도, 기소하고 재판이 끝난 뒤 길게는 6개월정도만 지나도 희미해집니다. 저랑 그렇게 씨름했던 피의자의 이름도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드리고 싶은 말씀은, 검사들에게는 그야말로 지나가는 게 사건인데 피의자나 사건 관계인들에게는 인생의 위기입니다. 검사들은 당사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는 평생 한 번 있을까 말까한 사건들을 매일 처리하는 거죠. 평검사 때는 잘 몰랐는데, 이제 한 발 떨어져서 보다 보니까 이런 지점이 보입니다. 그래서 후배 검사님들에게 자주 하는 얘기가 있습니다. 제가 청주에서 평검사로 근무할 때, 저보다 대여섯 살 정도 나이가 많으신 수석님이 계셨어요. 그때 청주라는 지역에서 뇌물 사건을 수사하고 있었는데, 그 사건에 대해 상담을 드리러 간 적이 있습니다. 사람의 운명을 점치는 주역을 계속 공부하신 분이었는데, 그분이 저에게 대상의 생년월일을 알려달라고 하셨습니다. 소위 얘기하는 사주죠. 연과 월과 일과 시 중 앞의 세 가지만 알면 명리학을 하시는 분들은 대략 추정이 가능한 모양이에요. 저는 이해가 안 가서, 그걸 왜 가지고 오라고 하시냐 물었더니, 그 선배가 하시는 말씀이 이랬습니다. 저에게는 이게 업무이기 때문에 제 운명이랑은 하등 이해관계가 없지만, 그 대상에게는 평생의 위기이기 때문에 그 사람의 올해 운수를 보면 사건이 제 입장에서 잘 풀릴지 안 풀릴지를 알 수 있다는 겁니다. 결과를 떠나서 그 말이 주는 메시지가 되게 컸습니다. 저에게는 아무것도 아닌데 상대방에게는 평생의 가장 중요한 일이다. 그렇기에 우리 검사들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 중 하나가 바로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다루는 사건 하나하나가 관계인들에게는 중요한 일이라는 걸 명심해야 합니다. 이 지점 또한 검찰에 국한해서 볼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어느 직역에서 무슨 일을 맡든지, 나에게는 직업의 한 부분이지만 그 일에 관여하는 사람들에게는 중요한 일입니다.



6. 미래의 법조인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조언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현재 법조인으로 생활하고 있는 명지대 선배님들이 꽤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제 업무가 바쁘다는 핑계로 모임 같은 것을 제대로 다니지 못했는데, 상당히 많은 분들께서 각 영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법조인을 꿈꾸는 후배님들께서도 분명히 잘 할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제가 사법시험을 처음 합격했던 99년의 법조인 모습과, 지금의 법조인 모습은 확연하게 다릅니다. 국민들의 인식 수준도 달라지고 법조인에게 바라는 모습도 달라졌죠. 돌이켜보면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그래서 우리 법조인들도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달라져야 할 것 같습니다. 요즘 언론 기사나 관련 책에서 AI 시대라는 얘기를 많이 합니다. AI가 의사와 변호사를 대체하고, 판사도 대체할 수 있다는 얘기들이 자주 보이죠. AI가 양형을 하면 얼마나 정확하겠냐 하는 이야기들 또한 있습니다. 지금 20대인 여러분이 제 나이 또래쯤 되는 30년 후에는 얼마나 많은 게 변해 있겠습니까.

제가 막연하게 지금으로부터 30년 후 법조계의 모습을 상상해 보고 짧은 소견이나마 조언을 드리자면, 저희 때는 판례를 많이 아는 사람이 유능했습니다. 연수원 때도 어떤 케이스에 판례를 적용시켜 주관식을 쓸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테스트가 되게 중요했고, 판례를 모르면 점수를 얻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법조문을 머릿속에 기억하는 것도 중요했어요. 그러나 여러분들이 이미 아시다피시 이런 식의 지식의 중요성은 현업에서 확 떨어졌습니다. 그럼 앞으로는 AI가 근접하지 못할 것들이 중요합니다. 정확하게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그다음에 직관적으로, 소위 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직관적으로 올바른 판단을 하고 방향을 정하는 게 중요합니다. 이런 것은 AI가 인간을 대체할 정도가 되기 전까지는 오로지 인간들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인 것 같아요.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여러 판례나 법률 내용, 이론도 중요하지만 정확하게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올바르게 신속한 판단을 내려 방향을 설정하는 게 중요합니다. 예비 법조인 분들께서는 이와 같은 훈련을 해 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제가 검찰을 선발하는 면접위원으로 자리한 적이 있습니다. 검찰을 지원하는 로스쿨 학생들을 다른 면접위원들과 평가한 적이 있었죠. 그때, 틀에 박힌 답변을 하는 사람들과 자기 생각으로 말하는 사람의 차이가 보이더라고요.

두 번째로는 AI시대, 코로나19 시대가 되면서 사람들이 더 방어적으로 변하면서 서로 간의 관계가 더 나빠질 거예요. 의심도 많아지고 서로 불신하고, 경계하는 일이 많아질 겁니다. 앞으로의 미래 사회는 지금보다 더 긴장된 사회로 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런 사회에서 잘살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으로부터의 도움을 받고, 내가 도움을 주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이때 서로의 신뢰가 가장 중요하죠. 상대방을 배려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이런 가치들이 미래 사회에서는 지금보다도 훨씬 더 중요하게 자리매김할 것 같습니다. 이런 가치들을 생활에 응용할 줄 아는 사람과 기계적으로 자기 일만 하는 사람의 삶을 미래 사회에서 평가한다면 확연히 다르지 않을까요?

앞서 말씀드린 지점들을 고민해보시고, 역량을 키워보시면 좋겠습니다. 올바른 판단을 하는 훈련, 대인관계를 하면서 서로 커뮤니케이션하는 데 필요한 여러 가지 긍정적인 덕목들을 키우는 훈련을 하면 인정받는 법조인으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입니다.



7. 명지대학교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그동안은 바쁘다는 개인적인 핑계로 학교를 거의 잊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우연히 총장님과 법학과 학장님, 교수님을 뵙고 난뒤 학교도 둘러보게 됐습니다. 제가 다닐 때보다 많이 발전하고 명성도 커졌고, 이런 측면에서 큰 보람과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제 아들이 고등학교 1학년이라 대학을 살필일이 종종 있는데, 명지대학교의 객관적인 레벨도 상당히 높더라고요. 학교가 정말 많이 좋아지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발전하리라 믿습니다.

후배님들에게는 제가 평검사 시절, 졸업생으로 명지대학교에게 느꼈던 감정과 지금의 느낌에 대해 말씀드리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솔직하게 말씀을 드리면, 대학 시절이나 경력이 낮았던 평검사 시절에는 명지대학교에 대한 자랑스러움이나 자부심이 많이 부족했습니다. 법조인들은 소위 일류대를 나온 친구들도 많았기에 위축되는 느낌이 있었어요. 제가 대학 시절에 사법시험에 매달리고 집중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학교에 대한 만족감이 적었다는 것도 분명합니다. 제가 다니던 시점에는 그랬는데, 요즘에는 또 많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지금 여러분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 그리고 지금 제 아이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 앞으로 이 사회에서의 대학 서열은 사라질 거라는 것입니다. 사회 속에서의 대학 서열은 저희 시절이 마지막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요새는 평가도 다 블라인드로 하잖아요. 저희 때만 해도 저, 혹은 제 전 세대만 해도 소위 얘기하는 명문대 졸업장 하나만 있으면 죽을 때까지 그럭저럭 버틸 수 있는 시기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런 시대는 확실하게 갔습니다. 상황이 바뀌었다는 건 저보다 여러분들이 더 잘 아실 거예요.

저희 어머니가 90세까지 사셨는데, 저나 여러분들은 100, 120세까지 얘기합니다. 그러나 정작 사회적으로 정년이라는 게 60대 초반이거든요. 그 이후에도 30, 40년이라는 긴 세월이 남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10대에 머리가 트여서 공부를 열심히 해 좋은 대학에 갈 수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20대까지도 헤매다가 30, 40대에서 뭔가 깨달음을 얻고 큰 성취를 얻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볼 때 능력을 발견하고 발휘하는 것에는 각각의 시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기업인들이나 사회적으로 저명하신 분들, 지금 성공하신 분들을 살펴보고 말씀을 듣다 보면, 늦게 트인 사람들 중에도 훌륭한 사람들이 무척이나 많습니다. 좀 더 빨리 무언가를 해야한다는 것과 같은 강박과 더불어 시기적인 부분에 크게 얽매이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제가 맡은 직책에서 우리 명지대학교를 바라보았을 때 어떤 의미인가 말씀드리면, 경력이 얼마 되지 않았을 땐 괜히 위축되는 마음도 들었습니다. 제가 어디까지 승진해서 언제 퇴임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제가 우리 학교를 졸업한 것이 훨씬 더 도움이 돼요. 희소성도 있고요. 대학 서열이라든가 평가라든가 이런 게 여전히 어느 정도는 있겠지만 제가 볼 때 우리 대학, 명지대학교는 제가 다닐 때보다 훨씬 발전했습니다. 또한 사회적으로도 여러분들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시기는 각자의 상황에 따라 달라지겠죠. 명지대학교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시기가 다가올 때 능력을 발휘한다면 다들 각자의 영역에서 훌륭한 일을 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8. 앞으로의 계획이나 포부가 있다면 이야기 부탁드립니다.

제가 그렇게 면밀한 사람이 못 돼서 미래 얘기를 하거나 목표가 뭐냐고 물으면 난감합니다. 옛날 고등학교 때도 담임 선생님이나 어른분들이 물으시면 난감했거든요. 제가 지금 40대 중후반의 나이인데, 지금도 들으면 난감한 것 같아요. 미래에 뭘 할 거냐, 계획이 뭐냐는 물음에 답하는 데 약해요. 그래서 저는 이런 약점을 다른 방식으로 보완하고 있습니다. 미래는 비밀이라는 말이 있듯, 미래는 비밀이라 아는 사람이 없어요. 세상에서 점을 가장 잘 보는 사람도 미래를 맞추기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현재를 충실하게 살면서 맞닥뜨리는 상황을 직시하고, 현실에 집중해 살다보면 순간 떠오르는 번뜩이는 아이디어들이 있을 겁니다. 이런 아이디어들로 계획이나 목표를 세우는 데 부족한 약점을 보완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검찰에서 쭉 관례를 보면 부장검사를 다섯 번 정도 합니다. 차장 검사로 한두 번 하고 검사장으로 승진을 하느냐, 마느냐가 달려 있습니다. 검사장으로 승진을 해도 한 삼 년 임기를 지내면 길게 임기를 지내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제가 현재 세 번째 부장검사의 직책을 맡고 있으니, 검사로서의 삶이 얼마 안 된 것 같은 느낌이지만 잘 마무리를 해야 할 시기가 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저도 눈앞의 현재를 살기 때문에 목표는 항상 바로 앞에 있어요. 예를 들면 제가 지금 있는 곳이 인천지검 외사형사부라고 했는데, 외사 영역은 저도 처음 다뤄보는 거예요. 지금까지는 이쪽 분야를 다뤄보지 않았기 때문에 공부도 해야 하겠죠. 더불어 우리랑 관련있는 인천 세관 본부, 인천 출입국 관리청, 경찰 외사과, 해경 외사과 등등의 분들과도 계속 소통하면서 일을 어떻게 해 나가야 할지 의논해야 합니다. 이런 게 당장 제 단기적인 목표나 계획이에요. 장기적인 목표나 계획은 계속 모색을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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