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교향악단의 르네상스를 주도할 강규형 교수를 만나다

  • 분류교수
  • 작성일2021.12.30
  • 수정일2021.12.30
  • 작성자 김*현
  • 조회수1838
서울시립교향악단의 르네상스를 주도할 강규형 교수를 만나다 첨부 이미지


 

명지대학교 방목교육대학 강규형 교수가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신임 이사장에 임명됐다. 강규형 교수는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위원, KBS 교향악단 운영위원, 서울스프링실내악 축제 집행위원, 구미국제음악제 자문위원 등 문화예술 분야의 일을 30여년 간 해온 문화예술계의 베테랑이다. 강규형 교수는 2002년부터 명지대학교에 재직하며 후임 양성에 힘쓰는 한편, 월간조선姜圭炯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를 연재하는 등 음악평론가 및 수필가로도 활발하게 활동했다. 대통령 상대 KBS이사 해임무효소송 승소 후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신임 이사장으로서 인생의 새로운 막을 연 강규형 교수를 만나 다채로운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Q. 안녕하세요.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인터뷰를 읽게 될 독자분들을 위해 자기소개와 지금까지의 발자취에 대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서울시립교향악단(이하 서울시향)의 이사장을 맡게 된 강규형입니다. 명지대학교에서는 20년 정도 음악 교양 과목을 맡아서 강의하고 있고요. 음악은 어렸을 때부터 좋아해서 음악학을 오래 공부했어요. 문화예술 분야에서 계속 활동했는데 특히 음악계에서 제일 열심히 일했던 것 같습니다.

 



2. 이번에 서울시향 이사장이 되셨는데, 독자분들을 위해 서울시립교향악단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그동안 정치행정 관련 제안을 받고서는 모두 고사했었는데, 국내 교향악단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사장직에 자원했습니다. 서울시향은 우리나라의 대표 교향악단입니다. 제가 KBS 교향악단 운영위원으로 있을 때까지만 해도 그곳이 대표 교향악단이었는데, 2004년 이후 드미트리 키타옌코 지휘자가 상임 지휘자를 그만두고 그 부재가 오래 이어져 쇠퇴했지요. 그러는 사이 서울시향이 정명훈 지휘자를 영입하며 한국 대표 자리로 올라섰어요. 정명훈 감독이 안 좋은 문제로 사퇴하고 세계적인 팬데믹이 이어져 서울시향도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재도약이 필요한 시점이에요. 서울시향에 저와 함께 손은경 대표이사(CJ부사장)가 취임했는데, 대표를 도와서 이사회를 꾸려 나갈 생각입니다. 첫 이사회를 진행해보니 다들 비슷한 문제의식과 목적을 공유하고 있어 다행이란 생각입니다.

 


3. 서울시향 이사장직의 직무에 대한 소개와 어떠한 방향으로 시향을 이끌어나갈 것인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이사회는 서울시향의 모든 일과 방향을 제의하고 논의하고 승인하는 자리예요. 여러 사람의 의견을 조율해야 하기 때문에 이사회를 주관하는 게 상당히 중요한 일입니다. 오케스트라로 예를 들면, 가장 중요한 자리가 지휘자이고 지휘자에 따라 오케스트라의 방향이 바뀝니다. 이사장과 이사회도 서울시향에 그런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다행히 저와 이사들은 서울시향의 재도약이라는 측면에서 의견의 일치를 이루고 있어요. 목표는 서울시향이 계속 한국의 대표 교향악단의 자리를 지키면서, 동시에 세계 수준의 교향악단이 되는 것입니다. 서울시향의 잠재력은 이미 아시아 최상급이라고 생각해요. 서울시향의 도약을 위해 몇 년 후 음악감독을 어떤 분으로 모실 것인지 논의하고, 새로운 단원을 맞아 연주력을 높이는 등 정비에 힘을 쓸 예정입니다.

 



4.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위원 등 역사문명과 문화예술 분야에서 다양한 일들을 해오고 계신데, 이러한 일들을 해올 수 있던 원동력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A. 음악계, 또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위원, KBS(한국방송공사) 이사 등으로 일하면서 문화와 음악은 제 삶에 항상 있었어요. 2008년에는 어느 호모 루덴스의 음악사랑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수필춘추에서 신인상을 받고 등단하기도 했는데, 호모 루덴스는 요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의 동명의 책으로 유명해진 개념이죠. ‘놀이하는 인간이라는 뜻인데, 먹고 사는 게 충족되면 인간은 문화생활을 원한다는 거예요. 소송 전까지 저는 줄곧 이 호모 루덴스적인 삶을 살아왔습니다. 잠깐 그런 삶과 멀어졌다가 다시 음악계로 돌아오게 되어 정말 즐겁습니다.

 



5. 방목기초교육대학의 교수로 재직 중에 역사와 이해, 현대세계의 이해, 서양음악의 이해, 서양음악사, 음악 감상법 등 다양한 강의를 맡아오셨는데, 학생들을 가르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지점이 무엇인지, 또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으시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A. 학생들과의 교감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의 나쁜 부분을 보고 그러면 안 되겠다, 하고 배우는 것을 반면교사라고 하지요. 제가 대학에 다닐 때만 해도 수업에 소홀한 교수님들이 많았습니다. 그런 교수가 되면 안 되겠다고 다짐하고 지금껏 휴강 한번 한 적 없습니다. 등록금이 아깝지 않은, 등록금의 몇 배가 되는 수업을 제공해야겠다는 마음이었지요. 내 수업을 열심히 들은 학생들이 평생 잊지 못할 지식, 잊지 못할 얘기들을 얻고 그게 사회에 나가서도 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지금도 연락을 하는 제자가 있는데, 현재 구글 본사에서 전무를 맡고 있습니다. 명지대 출신은 아닌데, 미키 킴(김현유)이라는 제자예요. 그 친구가 저를 인생의 멘토라고 칭합니다. 그 친구가 삼성전자의 이스라엘 담당이 됐을 때, 동기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이랑 일하면 많이 힘들 거라고 얘기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오히려 기회가 될 거라고 말했어요. 제가 했던 조언이 큰 도움이 됐다고 인터뷰에서도 얘기하더군요.

 



6. 명지대학교 학생들을 위한 조언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아쉬운 점이 있다면, 도전 정신이 우리 세대보다 약한 것 같습니다. 앞으로 활약할 무대를 좀 더 넓게 봤으면 좋겠어요. 학생들의 무대는 한국이 아니라 전 세계인데, 그렇게 뻗어 나가기 위해서는 언어가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음악계에서 일하면 여러 나라 사람과 협업하게 됩니다. 외국어에 능통하면 사람들과 친분을 쌓기도 쉽고 일의 진행 속도도 빨라져요. 학생들이 영어를 포함해 제2외국어에도 도전을 해봤으면 좋겠습니다. 또 저는 방목학술정보관이 세계에서 가장 좋은 도서관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명지대학교처럼 좋은 도서관을 가지고 있는 학교가 드물어요. 이제 MCC관도 개관했으니, 도서관과 캠퍼스를 잘 이용하면 학생들을 비롯해 명지대학교에도 부흥기가 올 것 같습니다.

 


7.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포부나 계획이 있으시다면 말씀부탁드립니다.

 

A. 전대미문의 팬데믹 사태가 사회에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오케스트라 운영도 많이 어려워졌고요. 그 충격에서 벗어나 위드 코로나시대에 적응해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정상화라는 단어를 쓸 수 있겠죠. 소송 승소 후 개인적인 어려움에서 벗어났으니, 일에 집중하고 싶습니다. 학교에 빚진 마음이 커요. 학생들 얼굴도 보고 싶고요. 서울시향과 함께 명지대도 재도약을 해야겠지요. 둘 다 큰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양쪽의 발전에 기여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이 저의 가장 큰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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